1조 규모 ESS 2차 대전, 수성이나 설욕이냐

총사업비 1조 원에 달하는 제2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입찰을 앞두고 국내 배터리 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 입찰은 정부의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일환으로, 2038년까지 전국에 23기가와트(GW) 규모의 ESS를 공급하는 장기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번 2차 입찰 물량은 2027년 전력 계통 안정화에 필요한 540메가와트(MW) 규모로, 지난 1차 입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던 삼성SDI가 다시 한번 웃을 수 있을지, 아니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설욕에 성공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7월 마무리된 1차 입찰은 삼성SDI의 독무대였다. 당시 국내 배터리 3사 중 유일하게 국내 생산 조건을 충족시킨 삼성SDI는 전체 8개 사업지 중 무려 6곳을 싹쓸이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앞세웠던 LG에너지솔루션은 2곳 확보에 그쳤고, SK온은 단 한 곳도 따내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비가격 평가 항목인 ‘산업·경제 기여도’에서 국산 제품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결과였다.

판도 흔들 ‘안전성’ 평가와 국산 LFP의 등장

이번 2차 입찰의 관전 포인트는 달라진 평가 배점과 LG·SK의 태세 전환이다. 정부는 화재 및 설비 안전성 배점을 기존보다 3점 높이고, 산업·경제 기여도 배점도 상향 조정했다. 이는 안전성이 높은 LFP 배터리를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이에 발맞춰 LG에너지솔루션은 충북 오창 공장에, SK온은 충남 서산 공장에 ESS용 LFP 배터리 생산 라인을 구축하거나 양산성 검증을 마쳤다. 2027년 납품 시점에 맞춰 ‘메이드 인 코리아’ LFP 배터리 공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반면 삼성SDI의 주력인 삼원계(NCA)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출력이 강하지만, 화재 안전성 측면에서는 LFP 배터리에 비해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FP 배터리는 열 폭주 시작 온도가 270도로 높아 화재에 상대적으로 강하다. 삼성SDI는 2027년에야 국내 LFP 양산 계획을 잡고 있어, 이번 입찰에서는 사실상 기존 NCA 배터리로 승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SDI가 1차 입찰 당시 막판 가격 인하 전략으로 재미를 봤지만, 안전성 평가 비중이 커진 이번 판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LFP 공세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북미 상업용 공조 시장을 겨냥한 LG전자의 AI 승부수

국내에서 배터리 수주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북미 시장에서는 LG전자가 차세대 공조 솔루션을 앞세워 상업용 건물 에너지 시장 공략에 나섰다. LG전자는 최근 미국 시장에 AI 기술을 탑재한 시스템 에어컨 ‘멀티브이 아이(Multi V i)’를 출시하며 글로벌 냉난방공조(HVAC) 시장 리더십 강화에 나섰다. 이번 신제품은 전기 구동 방식의 히트 펌프를 기반으로 한 가변냉매흐름(VRF) 솔루션으로, 에너지 효율성과 설계 유연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LG전자가 독자 개발한 ‘AI 엔진’에 있다. 이 시스템은 온도, 습도는 물론 재실자 유무까지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스스로 실내 환경을 최적화한다. 단순히 쾌적함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에너지 사용량을 모니터링하고 과다 사용이 예측될 경우 사전에 알림을 보내는 등 능동적인 에너지 관리가 가능하다. 이는 에너지 비용 절감과 효율적인 건물 관리를 원하는 건물주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고든 전략이다.

극한 환경도 견디는 고효율 친환경 기술

‘멀티브이 아이’는 이전 5세대 모델 대비 에너지 효율 효율(EER)을 최대 28.3%까지 끌어올렸다. 지구온난화지수(GWP)가 낮은 R-32 냉매를 적용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등 친환경 트렌드에도 부합한다. 영하 30도(화씨 -22도)의 혹한이나 영상 52도(화씨 126도)의 폭염 속에서도 안정적인 냉난방 성능을 발휘하도록 설계되어, 기후 변화가 잦은 북미 지역의 다양한 상업 시설—학교, 병원, 호텔 등—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공한다.

단일 프레임으로 최대 22톤의 용량을 처리할 수 있는 컴팩트한 디자인과 소음 제어 기술, 원격 펌웨어 업데이트 기능 등은 설치와 유지보수의 편의성까지 대폭 높였다. 국내에서는 배터리 3사가 ESS 시장의 패권을 두고 격돌하고 있다면, 해외에서는 LG전자가 AI 기반의 첨단 공조 기술로 에너지 효율화 시장을 선도하며 K-테크의 저력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전력거래소는 업계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말 2차 ESS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며, 내년 2월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2027년 전력망 안정을 위한 퍼즐을 맞출 계획이다.